깨어 있는 주권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함
1. 인간이 가진 근원 힘이 아래로 흐르면서 국가를 낳(生)고 기(育)름
: 사람은 하늘, 사람이 생육(生育)하는 나라는 땅
「대한민국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대한민국헌법」 제1조에 따라 백가지 성씨의 모든 사람들(民)은 주인(主)이며 권력의 원천(源泉)인 주권자(主權者)이다.
국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원 힘(권력)으로 국가를 생육(生育)하므로 국민과 국가의 상대적 관계는 부모와 자식, 하늘과 땅, 권력자와 권한자, 근원 힘을 가진 자와 위임된 힘을 가진 자, 창조자와 창조물, 주인과 봉사자이다.
<그림 1> 주권자(권력자=주인=하늘)와 국가(권한자=봉사자=땅)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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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
국민《(民)》이 나라의 주인《(主)》이며 이들 모두가 《함께(共)》하고 《화합(和)》할 때 대한민국이 생장(生長)․번성(蕃盛)하게 된다.
만약 이와 반대로 나라의 주인(主人)들이 서로 《편을 가르고》 자기편을 선으로, 상대편을 악으로 이름 짓고 ‘왜 자기편이 선이며 상대편인지 악인지’를 합리화하는 철학과 사상을 만들고 이를 자신의 머리 속에 새겨 넣음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쇠창살 속에 가두어 스스로 정신적 자유를 잃은 노예가 되고 정치․경제․언론․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돈 또는 정의’라는 수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자기편의 세(勢)를 불리고 우세(優勢)를 차지한 쪽이 ‘다수결’로 정권(政權)을 쟁취하여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상대편의 자유를 제한하고 상대편을 착취하며 때때로 상대편을 무참히 죽이기도 하면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피의 역사를 써내려가게 되면 대한민국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부침(浮沈)을 겪게 된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따라 《선악을 나누고 편을 가르어》 이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함으로써 에덴동산을 지옥으로 바꾸었던 인류 역사가 너무 길다.
사람들은 그동안 서로 편을 가르고 서로 싸웠으며, 피범벅이 된 얼굴로 자신을 학대하며 행복을 찾고 있다. 마치 어느 강아지가 너무 행복하여 자신의 꼬리를 흔들 때 이를 본 다른 강아지가 자신의 꼬리를 쫓아가며 원을 그리는 것처럼...
깨어난 주권자들만이 나라의 주인으로 서서 모두가 함께(共)하고 화합(和)하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을 세워낼 수 있다.
이 인류의 고통을 보며 깊은 자비심으로 조언(助言)하셨던 수많은 성현(聖賢)들에게 잠시 귀 기울여 보자.
예수: 마태복음 7장 1∼5절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너희가 심판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가만, 내가 너의 눈에서 티끌을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여!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내라. 그 후에야 네가 밝게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끌을 뺄 수 있으리라. 예수: 요한복음 1장 1∼9장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 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어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인은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인간이 스스로 선악(善惡)을 나누고 서로 편을 갈라서 서로를 심판하는 순간, 인간은 누구나 선을 행하는 선인(善人)이 될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악을 저지르는 죄인(罪人)이 된다. 그리하여 예수 말씀처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어라.”
이제부터 자신에게 던지어야할 돌을 다른 이에게 던지지 말라. 다른 이에게 던지는 하나의 돌이 일곱 개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리니!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불변의 법칙이라. 항상 자신이 준 것의 일곱 배를 받을 것이라! 그리하여 인간은 항상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상대방에게 주고 바로 그 것을 7배로 받게 된다. 당신이 누군가를 악인(惡人)이라고 낙인찍으면 당신이 바로 그 악인보다 7배 나뿐 사람으로 낙인찍히리라!
‘세상은 나 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이므로...’
노자: 도덕경(道德經) 1장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어떤 이가 도라고 하면 (다른 이가 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므로)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 어떤 이가 이름 지으면 (다른 이가 다르게 이름 지을 수 있으므로)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 (사람이 분별하기 전)이름 없는 천지가 태초의 시작이며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 (사람이 분별한 후)이름 있는 만물이 어머니이다.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 그러므로 항상 하고자 함(이름 붙이고자 함)이 없음으로 그(천지와 만물) 오묘함을 보며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 항상 하고자 함(이름 붙이고자 함)이 있음으로 그(천지와 만물) 나타남을 본다.此兩者同(차량자동) : 이 두 가지(천지와 만물)는 같은 것이나出而異名(출이이명) : (사람이 이름을 붙여) 나오면 서로 이름이 다르다.同謂之玄(동위지현) : (천지와 만물이) 같다는 것을 일러 신묘(神妙)하다고 한다.玄之又玄(현지우현) : 신묘(神妙)하고 또 신묘(神妙)하니衆妙之門(중묘지문) : 모든 신묘(神妙) 것이 (나오는) 문이다 2장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 세상 모두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이 아름다움을 만들고斯惡已(사악이) : 이것의 (상대인) 추함 이미 (있게 된다.)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 : 모두가 선(善)다고 아는 것이 선(善)함을 만들고斯不善已(사불선이) : 이것의 (상대인) 선하지 않음이 이미 (있게 된다.)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 :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생기고難易相成(난이상성) :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함께 이루어지고長短相較(장단상교) : 길고 짧음이 서로 함께 맞대어서 드러나고高下相傾(고하상경) : 높고 낮음이 서로 함께 위아래로 뒤집어 있고音聲相和(음성상화) : 음(音)과 성(聲) 서로 함께 조화하고前後相隨(전후상수) : 앞과 뒤가 서로 함께 맞대어서 좇아간다.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 : 이로써 성인은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있음과 없음, 어려움과 쉬움...을) 만들지 않고도 (모든 것을) 이루는 곳에 머물고 있다.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 행(行)하고 분별(言)하지 않는 것으로 가르치고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 : 만물(萬物)이 이루어질 뿐이어라! (감히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있음과 없음, 어려움과 쉬움... 등) 한쪽으로 치우친 말을 하지 않는다.生而不有(생이불유) : (선과 악 등을) 낳을지라도 (거기에) 있지 않고 爲而不恃(위이불시) : (선과 악 등을) 만들지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 : (선과 악 등을 만들어) 공을 이룰지라도 (거기에) 안주(安住)하지 않는다.夫唯弗居(부유불거) : 참으로 오직 (선과 악 등 편 가르기에) 머물지 않을 뿐이로다!是以不去(시이불거) : 이로써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
전하는 말로 노자가 신선(神仙)이 되려고 국경을 넘을 때 국경 수비대장이 노자를 막아 서서 말했다고 한다.
“후세를 위해 좋은 책을 써주지 않으면 절대로 보내주지 안겠소.”
그래서 도덕경(道德經)이 세상에 남겨 졌다. 내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내 가슴은 뛴다. 가슴 뛰게 하는 생명의 시가 그렇게 세상에 남아 우리 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신의 은총(恩寵)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나 눈만 뜨면 이를 볼 수 있게 항상 당신의 바로 옆에...
모든 이가 깨어나 주인(主人)으로 서는 그 날까지 항상 빛이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늘임을 확인하고 날개를 펴 하늘로 오를 때까지 신의 은총(恩寵)은 무한하다.
신(神)은 항상 99마리의 양떼를 두고 1마리의 길 잃은 양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지금 여기 당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당신의 이웃은 항상 99마리의 양떼를 두고 1마리의 길 잃은 당신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 분은 때로는 거지로 또는 부자로,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또는 못생긴 여인으로, 때로는 자상한 부모로 또는 난폭한 부모로, 때로는 말 잘 듣는 자식으로 또는 말썽쟁이 자식으로, 때로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또는 빼앗는 사람으로...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늘이시다.
그 분께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라. 지금 여기 당신의 바로 옆에 있는 당신의 이웃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고 그 7배의 사랑을 받으라.
아래 예수 말씀을 심장에 새겨 조건이 붙어 있지 않은 사랑을 주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 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마태복음 7장 7∼12장 -
당신이 조건부 사랑을 주면 하늘에 계신 당신의 이웃으로부터 조건부 사랑을 받을 것이며, 당신이 무조건의 사랑을 주면 바로 그 것을 당신이 받을 것이며, 당신이 무한의 사랑을 주면 바로 그 것을 당신이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예수-”
1.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중 일부]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등 상대적인 어떤 두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도(道)를 이루고 난 뒤에 비구들에게 최초로 설법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합니다.이 초전법륜의 가르치심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불교의 근본교리가 들어 있으며, 중도설도 그 중의 하나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중도설은 극단적인 두 변에 집착하지 말라는 실천적인 사항입니다. 이와 같이 최초의 중도설은 수행자의 실천에 관계하여 제시된 것입니다.그 법문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먼저 팔리어(pali)로 씌어진 남전장경(南傳藏經)의 번역문을 인용하고 나중에 다시 그에 해당하는 북전(北傳)의 한역(漢譯)경문을 일부 발췌하여 보겠습니다.그때에 세존(世尊)은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두 변(二邊)이 있으니 출가자는 가까이하지 말지니라. 무엇을 (그) 둘이 라 하는가. (첫째는) 여러 욕망을 애욕하고 탐착하는 일은 하열하고 비천하여 범부의 소행이 요, 현성(賢聖)이 아니고 의(義)에 상응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는 이 두 변을 버리 고 중도(中道)를 바르게 깨달았느니라. [ 南傳大, 律部 3, p. 18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상대적인 견해를 말하는 두 변(兩邊)가운데는 선악(善惡), 유 무(有無)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여기에서는 고(苦)와 낙(樂)을 예로 들었습니다. 인용한 경문에 있는 두 변 중 첫 번째는 욕망에 탐착하는 욕락(欲樂), 즉 낙(樂)을 말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고행에 집착하는 괴로움, 즉 고(苦)를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고(苦)와 낙(樂)을 예로 든 것은 부처님 당시의 실정에 따라서 말씀하신 것입니다.즉 그 당시 수행자들의 상당수가 고행을 위주로 하는 고행주의자(苦行主義者)였으며, 부처님을 따라서 최초로 출가한 다섯 비구도 세상의 향락을 버리고 고행을 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였으므로 부처님이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이 고(苦)와 낙(樂)을 예로 든 것입니다.많은 출가자들이 세간의 향락을 버릴 줄만 알고 고행하는 괴로움, 이것도 병인 줄 모르고 버리지 못하지만 참으로 해탈하려면 고(苦)와 낙(樂)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로 깨달은 것, 정등각(正等覺)한 내용이 중도라는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고(苦)와 낙(樂)을 버린다는 것이 어찌 그다지 어려운 것인가라고 생각하여, 부처님이 다섯 비구에게 고(苦)와 낙(樂)을 버리라고 한 것은, 평범하게 말씀하신 것이지 철학적으로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중생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바로 깨쳐서 해탈을 얻기 전에는 무엇을 대하든지 그것은 고(苦)가 아니면 낙(樂)이고 낙(樂)이 아니면 고(苦)라서 항상 양변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설사 열반(涅槃)을 성취하였다 하여도 열반의 낙에 머물면 그것도 병으로서 중도가 아닙니다. 고(苦)와 낙(樂)을 떠난다는 것은 세간의 고(苦)와 낙(樂)이라든지 출세간의 낙(樂)이라든지 모든 집착을 완전히 떠나는 것을 말하며, 그 고(苦)와 낙(樂)등 일체의 양변을 떠난 경계를 중도라 합니다.이렇게 양변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했다는 이 초전법륜을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부처님의 근본법륜이라는 것은 세계의 어느 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없습니다.부처님께서 다시 고하여 말씀하셨다.'세간에는 두 변이 있으니 응당 가까이 하지 말지니라. 첫째는 애욕을 탐하여 욕망은 허물이 없다고 말함이요, 둘째는 사견으로 형체를 괴롭혀 도의 자취가 없음이다. 이 두 변을 버리고 곧 중도를 얻느니라.'佛復告曰호대 世有二邊하니 不應親近이라. 一者는 貧著愛欲하여 說欲無過요 二者는邪見苦形하여 無有道述이라 捨此二邊 便得中道니라 [大正藏 22, p.104中, 五分律]'비구여, 출가자는 두 변을 가까이하지 말 것이니, 즐겨 애욕을 익히거나 혹은 스스로 고행하 는 것이다. 현성의 법이 아니며 심신을 피로하게 하여 능히 행할 바가 아니다.비구여, 이 두 변을 제외하고 나서 다시 중도가 있느니라.此丘出家者는 不得親近二邊이니 樂習愛欲이나 或自苦行이라 非賢聖法이요 勞疲形神하여 不能有所辨이라 此丘 除此二邊已하고 更有中道니라 [大正藏 22, p.788上 四分律]이 중도선언은 이와같이 한역(漢譯)의 오분율(五分律) 사분율(四分律)에도 나오나 팔리어로 씌어진 남전장경의 기록과 같이 명백하고 정확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깨치신 것이 중도라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남전장경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숫타니파아타(Suttanipata)」라는 경(經)이 있는데, 그 가운데 피안도품(彼岸道品)에서 중도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양 극단에 집착하지도 않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두 극단인 두 변에도 집착하지 말고, 그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격식을 벗어난 대장부의 행동입니다.많 은 불교학자들은 율장(律藏)에 있는 초전법륜의 중도대선언을 불교의 근본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데, 혹 또 논란하기를 그보다 더 앞선 경전인 「숫타니파아타」에도 중도의 내용이 있느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기에 여기 피안도품을 인용한 것입니다. |
이제 우리 하늘같은 주권자들은 부처가 2500년 전에 외친 ‘중도대선언(中道大宣言)’을 선포할 때가 되었다.
선악(善惡)․미오(美惡)․유무(有無)․생멸(生滅)․고락(苦樂)으로 나누어 보는 《편 가르기》를 보라. 이를 노자 말씀으로 ‘인위(人爲)로 이름 있음(有名)’이라.
이 《편 가르기》가 인간 고통(苦痛)의 뿌리임을 보고 여기에 집착(執着)하면 고해(苦海)의 바다에 빠져들게 됨을 알라. 그리고 이 집착을 멸(滅)하여 중도(中道)로 가라.
사성제(四聖諦)-고집멸도(苦集滅道):
네 가지 성스러운 것[고집멸도(苦集滅道)]를 자세히 살펴보고 앎
이 《편 가르기》에 대한 집착을 멸(滅)하라. 이를 노자 말씀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이름 없음(有名)’이라. 노자의 《도(道)》는 바로 부처의 《중도(中道)》이며 공자의 《중용(中庸)》이며 예수의 《남을 심판하지 않음》이다.
부처의 마음과 모든 이의 마음은 모두 일심(一心)으로 같은 것이다.
하나 가운데에 모든 것이고 모든 것 가운데 하나여서 하나는 바로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바로 하나이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 의상의 법성게, 화엄일승법계도: 華巖一乘法界圖)
이를 ‘하나의 마음(一心)이 모든 이의 마음에 새겨있다’ 하여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고도 한다.
부처 말씀처럼 양 극단에 집착하지도 말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렇게 두 변(二邊)을 버리고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라.
중도(中道)는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중간이 아니다.
음양합일(陰陽合一)의 《태극(太極 )
》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이는 주권자들이 양 극단에 집착하지도 않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편 가르기》를 멈추고 나라의 주인《(主)》들 모두가 《함께(共)》하고 《화합(和)》하는 것이다.
편을 가르지 않음 | 중도(中道) |
편을 가름 | 보수(保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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