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 사천 명이 부른 노래.(묵14;1~5).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 하였지만 이는 3이라는 하느님의 숫자와
땅의 숫자가 곱하면 12가 되고, 그 12를 12로 곱하면 144가된다, 거기에다 많다는 숫자인
천을 곱하면 144천이 된다. 그러니 이 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이름이란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이름이 구원받은 자들의 이마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전 인격으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사람의 영혼이란, 질량도 없고 중량도 없지만 파워는 간직하고 있는 무형의 실존체로서
순수 의지 그 자체라고 봅니다. 그 의지가 하느님과 어린양의 이름인 그의 전 인격체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만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으니 이는 그들 밖에는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입니다.
이는 노래라는 것은 그 영혼의 감성이 소리와 말로 표현되는 울림이라고 보는데, 그들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감성이 울림으로 터져 나오는 것으로서 그 환희와 충만의 울림은 그 단계에 올라있는 영혼 외에는 그 누구도 부를 수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다닌다 하였는데,
이는 생각과 뜻이 하나이면 그 하나의 생각과 그 뜻대로 하나같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숫총각들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생물학적인 숫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 죄인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 낫다면 그는 그 때부터가 순수 총각의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다시 난 그 영혼이 다시는 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 복음의 정절을 변함없이 잘
지켜낸 영혼 들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린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예수님 이후에 탄생된 영혼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담이후 문자적인 예수님이 아니고 하느님을 믿는 자들이 영적이고 영성적으로 다시 나서 진리 안에서 순수하게 사는 사람들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는 양들도 있으나, 우리 밖에 있는 양들도 데려와서 한 목자
밑에 있게 하겠다고 하신 대로 라고 봅니다.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선물이 주는 기쁨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또 하느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권세의 맛을 본 사람들이 이제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을 다시 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욕을 보이는 셈이니 그들에게는 다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카페 연옥영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