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병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너를 에워쌀지라 내가 심문권을 그들에게 맡긴즉 그들이 그 심문권대로 너를 심문하리라"(에스겔23:24) 하신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복지를 점령해 거하면서 정착민들의 악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화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저들의 우상 숭배와 음란방탕한 습성을 배우게 되자 하나님이 주변 이방 나라들을 불러 들여 그 죄악을 심문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가나안 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저들의 폐습을 꾸짖어(공격해) 정결케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폐습에 정복당하여 심령이 이방인화(적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이 그 배신에 대한 심문권(공격권)을 주변국들에게 넘겨 주어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늘날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권능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가르쳐 주신 율법의 권능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막강한 공격권(심문권), 곧 세상의 빛과 소금 노릇을 하여야 할 막강한 능력을 갖고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처럼 목숨 걸고 세상 사람들의 악습을 공격(질책)하지 못하고, 다만 교회 안에서만 빛과 소금 노릇 행세하며 육신의 천국(부귀영화)만 추구하였습니다. 세상 죄인들의 악습을 질책하여야 할 공격권(심문권)을 가지고도 빛과 소금 노릇을 감당하지 못한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이 또다시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공격권(심문권)을 그들의 대적인 공산주의자(종북 세력)들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온 인류는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인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 먹은 후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망의 후예(죄인)들이 온 지면에 퍼져 살아가고 있을 때에 최초로 육신의 목숨을 갖고 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지킨 분이 있었으니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온 땅의 사람들은 이미 사망의 법에 저촉되어 육신을 입고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만 진리로 알고 있는 터이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의 도를 가르치고 전하는 예수님을 다만 단순한 종교 창시자나 사상가, 아니면 한낱 기이한 수도승의 가르침 정도로만 가볍게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대 사회의 법과 기득권자들의 권위에 큰 위협이 되지 않거나 또 사회 혼란에 큰 지장이 없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한낱 기이한 종교로 취급받아 공생할 수 있었겠지만, 의외에도 그 언행의 영향력은 기존의 기득권자들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 문화적으로 중대한 변혁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기득권자들과 그 치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의 박근혜 대통령도 기존 정치인들과 사회 문화 언론인들의 눈에 가시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통치 행위가 저들의 이념과 사고방식과 행위를 심히 악하다고 단죄(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천태만상의 사상과 이념으로 갈라져 싸울지라도, 생명(선)과 사망(악)의 사상만큼 철두철미하게 편이 갈라져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생명(선)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사망(악)은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괴수 사단은 예수님의 등장과 성공은 곧 자기의 패망과 실패임을 알고 가나안 복지의 원주민들처럼 사생결단하고 예수님의 복음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보호해 지켰으며, 또 대한민국 기존 정치인들과 종북 세력들도 박근혜 대통령의 형통은 곧 자신들의 패망으로 인식해 단말마적인 반항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앞세우고 출애굽 할 때에 주변 민족들이 불안공포에 떨면서 자기들의 지역을 사수한 것과 같이, 마귀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무후무한 생명의 공격자가 자신들을 향해 잠식해 오는 것에 놀라 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2천 여년 간 거세게 항전하면서 쫓기다가 지금은 과학 문명과 민주주의 다수 여론이라는 최고 최대의 무기와 이론과 인적 자원을 배경 삼고 마지막 항전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의 선과 의와 분수와 도리를 무시하고 오직 수치와 기술과 능력에다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악마(김일성 일가들)이며, 민주주의 정치 제도 또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다만 사람의 다수와 덩치로 세몰이 수법에 능한 자를 승자로 삼으며, 언론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정직한 말에 근거를 두지 않고 독재 권력에 아부하여 국민들을 세뇌 공작시켜 강성 노조 활동과 촛불 시위 행위와 붉은 악마를 선전선동해 가르치는 매체로 전락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같은 거짓과 불법불의를 생존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식시킴으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비인간적, 비도덕적, 비윤리적 추행과 더불어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속 신앙(단군상 숭배, 토정비결, 사주, 풍수지리, 굿, 등등)과 합세해 예수님의 복음에 맞불을 놓고 차단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민족 종교(풍습)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부강을 이룩하였다고 자찬하며 외래종교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죽기 살기로 몰아내려고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뜻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공격(심문권)자의 자질(빛된 행실)을 갖추었더라면, 모세가 지녔던 권능보다도 더 막강한 진리의 철장(鐵仗)이 이런 토속적인 악습들을 질그릇 깨듯 깨뜨렸을 것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12:5) 하셨으며 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요한계시록2:26~27) 하셨으며 또,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요한계시록19:15)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격력(심문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개인과 나라와 민족이 될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은 참으로 홍해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권능보다 더욱 강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미 많은 영적 간첩(사단의 종)들이 침투해 들어와 오늘날 대한민국의 좌파 세력들 중에 활약하고 있는 간첩들보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 간첩들은 대부분 출애굽 할 때에 같이 동행하였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같은 신학자들이며 또 발람과 같은 선지자들로서, 공격(심문권)자의 입장에서 믿고 듣고 지켜야 할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을 한낱 나약한 수도승들의 심신수련용 염불 정도로 취급해 암송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비하 행위에 의해 심령이 심히 나약해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완악한 짓을 책망하고 질책해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지 못하고, 다만 예수님이 무슨 세상의 구세주로 당선되기 위해 출마한 입후보자인양, 만나는 죄인들마다 굽실거려 저자세로 인기(표)만 구걸하려 합니다. 즉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상실당한 채, 다만 죄된 인간들에게 인기를 얻어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주체 세력으로 당선되길 바랍니다. 이런 의미로 전파된 오늘날의 복음은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기 관리에 급급할 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권위와 능력과 진실은 추호라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지금 이 세상의 절대적인 진리와 실세로서, 또는 세상 모든 일(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들에 대한 해결사(구세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주된 원인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권능이 미약하게 된 것은, 비기독교인들의 외부적인 적대행위보다도 기독교인 내부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발람 같은 영적 간첩들, 곧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존의 유명 교역자들의 신학에 의해 예수님의 이미지가 한낱 종교적인 교주로서 그려지고 꾸며지는 일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복음의 용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천지만물의 주제되신 하나님의 막강한 능력과 권위를 심령에 담고 교회 바깥에서도 세상 권세자(유명인, 지식자)들보다 더욱 당당하게 모든 죄악을 책망하고 공격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불법자들과 대결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강력하심을 믿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어닥칠지도 모를 예수님의 십자가 같은 고난을 두려워하여 범죄와의 전쟁, 곧 이 세상 마귀들과의 한판 승부를 늘 회피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전사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례 요한보다 더 강경하게 세상 불의를 보고 꾸짖어 책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류 최대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신자들이 세상 여느 종교의 수도승들과 같이 성경말씀을 다만 회막안 같은 교회당 안에서만 묵상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으로 일관할 뿐, 회막 바깥 곧 교회 바깥에서 범람하는 세상 범법자들에 대하여서는 한 말씀이라도 던져 싸워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약하고 비열한 교역자들에게 배운 평신도들도 결국 성경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여 빛과 소금의 성분으로 세상의 검은 때를 씻어내려 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장막 안에서나 바깥에서 전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나안 복지 인근 주민들에게 마치 선전포고하듯 외치고 전하였으며, 또 공격나팔 신호처럼 울려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보다 더욱 막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도 세상 죄인들을 향해 한마디도 바깥에서 큰 소리로 질책해 경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도승들은 원래 도 닦는 사람들이지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고요?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근본정신입니까?
이스라엘 거민들은 하나님이 배정해 주신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제하고 모두 목숨 걸고 여러 성읍들을 공격해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모세 때보다 더 막강한 권능을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기독인들이 율법보다 더 강력하고 절대적인 심문권인 빛된 복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상 죄악을 호되게 질책하여 그들을 공격해 이기지 못하다니… 얼마나 예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으면, 예수님이 이 시점에서 몰아쉬는 한숨과 탄식 소리를 느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하였을까? 가슴을 치고 눈물 뿌려 통회자복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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